빅테크 기업의 샐러리 절벽 (Cliff), 그리고 나
업데이트:
우리가 늘 이야기하는 세계적인 빅 테크 (Big tech) 기업들은 다른 기업과는 조금 다른 독특한 보상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연봉을 이야기할 때 기본급 + 연말/연초 보너스(흔히 이야기하는 성과급) + 명절 보너스를 합쳐서 한 사람의 연봉이라고 정의 합니다.
하지만 비교적으로 이직의 난이도가 쉽고, 한 기업에 오래 재직하는 경우가 적은 개발자 관련 직종은 다른 종류의 보상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서 좋은 개발자를 원하는 기업의 수는 날이 갈 수록 늘고 있는데, 실력 있는 개발자를 채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이죠. 어디서 먼저 이러한 보상 구조를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이야기하는 구글, 메타, 애플, 아마존 등과 같은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기업들은 나름 긴 호흡을 갖는 보상 체계를 통해 직원들을 지키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 개발자 A라는 사람이 있다고 해봅시다. 이 사람의 연봉 구조는 크게 세가지 부분으로 나누어서 구성됩니다.
- 기본급 (Base Salary): 말 그대로 다달이 혹은 2주마다 지급받는 급여입니다. 고정급이라고도 하죠. 해마다 연봉협상 (이라고 쓰고 범인들에게는 통보라고 하죠)을 할 때 이 급여가 인상되는 것이죠.
- 사인 온 보너스 (Sign-on bonus): 이직을 하는 경우 이전 회사에서 우리 회사에 오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1~2년에 걸쳐서 나누어 지급하는 현금성 보상입니다. 보통 기본급과 더불어 월 단위로 지급해주고, 이전 기업의 기본급을 사인온 보너스 총액으로 지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주식 보상 (Stock Option or Restricted Share Units): 회사의 미래를 같이 하자는 뜻과 주인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서 다수의 주식을 낮은 가격에 입사할 때 계약을 하거나 매년 추가 갱신을 하는 스톡 옵션과 매년 주어진 시간에 일정부분의 주식을 해당 날의 시장 가격 혹은 특정한 기준의 가격으로 현금 또는 주식으로 지급하는 RSU 방식이 있으며, 보통 4년에 걸쳐서 지급합니다. (비율은 회사마다 다릅니다.)
기본급을 제외하고 보면 아시겠지만 모두 2~4년에 걸쳐서 나누어 지급을 합니다. 그래서 한국 혹은 아시아권에 있던 사람들이 북미기업에 취업을 하게되면 총액을 보고 혹해서 한번도 튕기지 않고 바로 사인해서 입사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내 회사의 보상은 생각보다 긴 호흡임을 알게 되고 난처해하는 경우도 간혹 생기죠.
아시겠지만 이렇게 나름(?) 긴 기간에 걸쳐서 지급하는 이유는 인력들을 오랜기간 잡아두고 싶기 때문이죠. IT 기업에서 4년은 생각보다 긴 시간입니다. 4년 전에 무슨 기술이 유행했었는지 기억하시나요 ?
https://www.hp.com/us-en/shop/tech-takes/top-10-technology-trends-2019 를 참조해보면 이 때는 한창 VR 의 태동기라고 너도나도 메타버스의 세계가 열린다 어쩐다 하는 시기였습니다. (물론 코비드도 한목 했지만요).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은 이 기술은 온데간데 없고 LLM (Large Language Model) AI이 모든 키워드를 다 잡아심키고 있습니다. 그만큼 변화가 빠른 도메인이기도 하죠.
그런 시장에서 4년을 붙잡으려니 어지간한 보상으로는 어렵다는 거죠. 큰 보상을 한번에 쏟아부어버리는 대신, 시간의 축을 늘려서 장기간에 걸쳐서 분할 상환하는 개념으로 바뀐겁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크나큰 헛점이 있습니다.
-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해야한다.
- (가장 중요한) 4년 이후에도 보상이 4년 이전 계약 수준만큼 유지 혹은 그것보다 더 발전해야한다.
첫 번째는 아주 일반적인 개념이니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회사가 성장해서 주식 가격이 오르고 연봉이 인상되고 한다면 전체 파이의 크기가 커지게 되니 보통의 신규 입사(이직)자의 보상 체계와 관련없이 모두가 행복해지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두번째의 경우는 조금 이야기가 다릅니다. 보통의 기업들도 4년 이후에도 사람들을 계속 유지하고 싶기 때문에 2~3년차 연봉협상 때부터는 5년차에 받을 주식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연봉협상시에 진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경제 상황이 어렵거나 회사가 충분하게 보상을 지불하지 못한다면 다음과 같은 상황이 펼쳐지게 됩니다.
4년차 보수 총액: 100,000 USD (80,000 기본급 + 20,000 주식 보상)
5년차 보수 총액: 90,000 USD (84,000 기본급 + 6,000 주식 보상)
이해하셨나요? 회사가 이직, 입사시에 약속한 보상보다 5년차에 받는 보상이 더 적게 되는 것이지요. 회사는 나름 잘 해줬다고 생각했는데, 개인이 실제로 피부에 닿는 느낌은 크게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Cliff (절벽)이라고 많이들 이야기합니다.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처럼 내 보상 총액이 줄어들었다는 것이죠.
보통 이 4년간 열심히 노력해서 다시 이직해서 더 많은 돈을 받거나, 승진을 해서 새로운 주식 계약과 연봉 계약을 해야한다 라는 가정이 깔려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기회를 손쉽게 얻을수는 없죠.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최근에 친한 매니저랑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언제까지 이 회사에 다닐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한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는 약 9개월간의 긴 육아휴직을 끝내고 돌아왔기 때문에 회사에서 받아준것만 해도 감사하다라는 마인드였지만요. 저에게는 통찰력 있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지금 밖에 나간다 라는 결정을 할거라면 직업 안정성이 있는 곳으로 가야해. 연봉이 오른다면 좋겠지만, 지금 상황은 아니야, 너도 그냥 여기서 조금 더 버티면서 승진을 노려보는게 어때? 나도 육아휴직동안 회사를 옮겨볼까 고민했지만, 바깥 시장은 너무 추워. 너가 비록 좋은 엔지니어이지만, 너와 같은 친구들이 수백명이 지금은 한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어. 너도 결코 쉽지 않을꺼야.”
네, 보상 절벽을 만나더라도 경제상황이 좋지 않으니 그냥 더 버티고 여기가 이제 익숙하니 너의 퍼포먼스를 더 끌어올려서 회사가 너에게 적절한 보상을 주도록 하는게 어떻겠냐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매니저는 You can do more를 외치면서 보상 없는 채찍질을 하고있는걸 말이죠..) 나쁘지는 않은 제안입니다만. 역시나 저는 내년 후반기에 총 약속한 보상이 끝나기 때문에 약간의 시간이 더 있습니다.
그때까지 상황을 지켜보며 실력을 연마하고, 회사에서의 실적을 내는 것에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미팅을 마무리 했었죠.
엔데믹 시기는 IT 기업에게는 크나큰 겨울입니다. 너무나 빠르게 타올랐고, 너무나 빠르게 가라앉았습니다. 저같이 그 때 시기를 잘 타지 못한 엔지니어에게는 관련 없는 이야기였었지만, 이제 점점 제 이야기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네요.
댓글남기기